Architectural  Design   / Urban Design   / Interior Planning   / Landscape Design   / Renovation


부르리 서울의 노래를

참여사회 2006. 4월호)


이태리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도시를 묻는다면 우리는 어떤 도시를 떠올릴까? 누구는 당연히 로마라고 할 것이고, 이에 반하여 물의 도시, 베네치아를 이야기 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밀라노, 피렌체, 나폴리 등도 각자의 취향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거들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여행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였던 베로나나 휴양도시인 꼬모나 소렌토, 기울어진 탑이 있는 피사, 탑의 도시 산 지미냐뇨, 팔라디오의 활동무대였던 비첸챠, 캄포광장의 시에나 등도 빼놓을 수 없다고 이야기 할 것이다. 이태리의 각 도시들은 크든 작든 각자의 역사와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로마를 다녀왔다고 해서 우리는 이태리의 모든 것을 보고 왔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대조를 이루는 여러 도시를 체험하는 과정 속에서 이태리에 대한 깊은 인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이러한 개성 있는 도시들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우리는 우리 땅의 낯선 도시에 도착했을 때 겪게 되는 새로움과 설렘이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낯선 도시의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였을 때 대부분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OO다방, OO슈퍼의 원색적인 간판들뿐이다. 서울이나, 부산이나, 광주나 우리 도시의 일상적인 경관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아파트와 간판으로 도배된 건물로 채워진 천편일률적인 경관으로 우리는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더라도 낯선 설렘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우리의 도시들은 각자의 개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 자기가 살아왔던 고향에 대해서 애착을 가지고 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분들은 이러한 관점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할지 모르지만, 당장에 읽히는 형상으로서의 우리의 마을과 도시들은 다른 곳과 구별되는 매력적인 모습과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학창시절, 여러 농촌마을의 주거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주택들이 같은 농촌 주택이더라도 충청도와 전라도, 그리고 제주도의 평면방식이 다르고, 경기도와 경상도의 부엌의 배치방식이 다른 것을 경험했던 필자에게는 언젠가부터 우리의 주택들이 천편일률적인 LDK식의 평면으로 표준화되고 농촌마을에까지 우뚝 솟은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을 보게 되기까지는 그야말로 순식간의 시간이었다.

우리의 도시가 서울이든 지방이든 천편일률로 표준화되는 것은 우리가 경상도나 전라도의 사투리를 쓰던 사람이 모두 서울말투로 이야기하게 되는 것과 같다. 경상도나 전라도 사람이 서울말을 쓸 때 더 어색함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서울은 서울 나름대로, 지방은 지방 나름대로 각자의 개성과 풍경을 가지고 있다. 부산은 바다와 이 바다를 둘러싼 능선으로 이루어진 도시이다. 강릉은 강원도의 넓은 산자락이 끝나면서 바닷가와 만나는 곳이다. 광주는 무등산에 둘러싸여서 넓은 평야지대를 아우르는 곳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부산, 강릉, 광주가 모두 똑같은 모습을 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각자의 도시가 그 생성되던 시기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거기에서 만들어진 경관과 조직을 담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얼마나 간직하려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차라리 어느 시기 이후 발전이 정체되어 박제처럼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할 수밖에 없게 된 군산이나 강경 같은 도시에서 오히려 낯설음과 새로움을 발견하게 되는 아이러니에 처해있다. 마치 새마을운동이 우리의 전국의 마을들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뒤덮어버렸듯이, 대부분의 대한민국의 모든 도시들은 서울로 대표되는 이미지와 형상으로 마치 모든 도시의 표준인양 뒤덮어 되어버린 것 같다.

이렇듯 대한민국은 서울밖에 없다. 김민기의 노래1)처럼 서울은 “거대한 독버섯”처럼 자라온 “나라의 절반이나 되는 도시”가 되어, “거대한 자석에 붙어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상의 도시”로서 마침내 대한민국 도시의 표준이 되어버렸다.

오백년 동안 지름 3~4km의 성곽 안에서 우리의 역사를 간직해오던 서울은 그 후 일백년 동안 급격히 확장되어서 거의 200배 가까운 면적으로 커졌다. 더구나 이러한 행정구역으로서의 서울의 면적 바깥으로 서울과 생활권을 같이 하는 신도시와 같은 지역까지 포함한다면 서울의 크기는 어마어마한 확장을 해온 것이다. 이 공간의 확장은 동시에 인구, 부, 문화, 정보의 집중의 과정이었다. 이제 서울은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은 서울이다.

이 서울의 확장과 집중은 더 나아가 전국 방방곡곡으로 확대되어 대한민국의 각 지방 도시들을 서울공화국으로부터 소외된 변방으로 전락하게 만들어서, 이 변방의 지방 도시들은 이제 서울에 의지하거나 혹시나 서울로부터 소외되지나 않을까 걱정하게 되는 모순에 처하게 되었다. 서울에서의 정답은 시골 마을에서조차 정답인양 받아들여지게 되고, 서울답지 못한 것은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린 듯하다. 대한민국은 서울증후군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은 절대명제의 도시가 아니다. 부산은 부산이어야 하고, 광주는 광주다워야 한다. 이제는 국가경쟁력의 시대가 아니라 도시경쟁력의 시대라고 이야기되듯이 각자의 도시는 각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부산다운 것, 광주다운 것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하다. 사람마다 피부색이 다르듯이, 우리 도시에도 각자의 색깔이 필요하다. 내 얼굴 중에 가장 내세울 만한 부위가 있듯이, 각자의 도시에도 내세울만한 공간과 경관이 있어야 한다. 심지어 내 몸에 남은 흉터가 내 몸의 일부이고 과거의 나의 삶의 흔적이듯이, 지금은 정체된 도시일지라도 과거의 한 시대를 간직했던 그 역사와 흔적들도 그 도시의 중요한 모습이어야 한다. 모두가 똑같은 얼굴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은 아무리 생각해도 해괴하다.

지방자치제가 이제 10여년이 되었다. 올 봄, 새로운 지방자치 조직의 출범을 앞두고 있다. 이제 우리의 도시에서도 진정한 지방자치의 모색이 시작되어야 할 때이다. 더구나 김민기의 노래처럼 서울이 그리 희망적이지 못한 것이 있다면 우리는 굳이 서울을 따라가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김민기의 뮤지컬 ‘지하철1호선’ 중 ‘서울의 노래’

“서울, 하늘 아래 단 한 곳,/사방이 온통 남쪽뿐인 이상한 도시/펄펄 끓는 가마솥도 이 보다는 더 하지 못하리/견디기 힘든 이 열병이 끝나지 않는 한/노래를 부르리, 서울의 노래/불로 소득자들의 낙원이여,/나라의 절반이나 되는 도시여/공룡모양의 커다란 풍선,/그 속엔 죽음의 아황산가스뿐/곡식 한 톨 자라지 못하고,/강에는 등 굽은 물고기뿐인데/거대한 자석에 붙어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상의 도시/너 청와대와 총독부, 또 주둔군 사령부/노래를 부르리 서울의 노래/너 투기꾼들의 낙원이여,/기생충들의 천국이여/창녀들의 보금자리/외국사람들의 파라다이스/가지도 못하는 자동차/취직도 못하는 고학력/입시 지옥, 교통 지옥,/한옥은 달동네에만 남았네/나무등걸도 없이 6백년을 자라온 너/거대한 독버섯 서울특별시여!!/토해논 라면을 밟고서 배기가스를 마시며/난 노래를 부르리 서울의 노래”

 

 

심시티 서울, 2006

참여사회 2006. 3월호


대한민국, 서울은 역동적인 도시다. 말 그대로 “다이내믹 코리아”다. 늦은 시간에도 서울의 곳곳은 수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우리들의 대부분은 바쁜 일과시간을 마치고도 집으로 바로 향하지 않고 친구들과 노느라 시간을 쪼개고, 주말이면 가족들과의 나들이를 위해서 교통체증을 마다하지 않는다. 잠자는 시간만 빼면 일하랴, 사람 만나랴, 노느랴, 정신없다. 이렇게 부지런한데다가 우리는 “빨리빨리”의 습성까지 가지고 있어서, 우리의 시계는 지구의 다른 곳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다. 경제성장도, 인터넷과 통신 강국이라는 명예도,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는 적극성도 모두 이러한 습성의 결과물일 것이다.

우리의 도시가 변화하는 시간 역시 매우 빠르다. 오래간만에 찾은 어느 동네가 옛날의 나지막한 풍경은 온데간데없이 고층의 아파트 숲으로 변해 있어서 당혹해한 기억이 우리 대부분에게는 있을 것이다. 육백년의 고도 서울은 단 일백년 만에 과거의 모습과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초기의 큰 변화가 제국주의라는 외부의 강압에 의한 변화라면, 해방 후 60여 년 동안에 우리가 직접 선택한 변화는 그야말로 눈부신 속도, 그 자체이다. 강남의 허허 벌판에 아파트 숲이 들어서더니 얼마 후 몇 년 만에 몇 십만의 인구가 사는 신도시가 들어서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 또 다른 신도시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혁혁한 성과에 의기양양할 수만은 없다. 이제 우리는 그 성과가 남긴 또 다른 숙제를 해결해야 할 상황에 처해있다. 더구나 그 숙제는 이제 “빨리빨리”로는 해결할 수는 없다. 이전의 우리 서울이 온갖 잡식의 영양분을 먹으며 쑥쑥 자라온 청년이었다면, 이제 그 청년은 과식과 자기관리 부족으로 각종 성인병의 징후를 드러내며 잘못 관리할 경우 큰 병에 걸릴 위험에 처해있다. 청년기 이전의 서울은 영양부족이었다면 장년의 서울은 영양과다에 운동부족이다. 이제는 당연히 다른 처방이 필요하다.

청계고가도로와 세운상가는 한 때 우리의 경제성장의 상징이었으나 이제는 도시의 소통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 되어버려서 급기야 철거되거나 재개발이 추진이 되기에 이르렀다. 사람 몸으로 친다면 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그 몸이 가진 자생력을 복원하는데 관심은 없고 당장의 종양 제거의 성과만을 홍보하는데 바쁘다. 이 수술도 가히 놀랄 만큼 빨리 이루어 졌다. 그러나 그 수술이 결과적으로 성공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다. 물론 청계천 물길의 속내가 다시 햇빛을 보게 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역사의 고증이나 유물을 무시하고 진행된 복원의 과정이나 저작권에 걸리지 않을까 염려스러운 짝퉁디자인으로 만들어진 다리들, 그리고 보행자와 장애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보행환경 등은 다시 세월이 지나면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여야 할 또 다른 숙제를 남겨놓았다.

또한 청계천 개발 계획에 따르면 주변은 높은 빌딩들로 채워져 변화할 것이고 그나마 사대문안에 남아있던 옛 골목길의 흔적이나, 그 속에서 가꿔온 우리의 작고 소중한 삶과 기억들은 사라질 것이다. ‘청계천 복원’은 복원이라는 이름을 가장한 ‘청계천 개발’인 것이다. 이 는 지난 세기의 개발방식에 대한 반성과 방침변화가 아니라, 또 다른 개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에게 도시를 만든다는 것은 과거의 것을 헐고 새로 만든다는 것인 것 같다. 서울은 항상 그래왔다. 부수고 짓고, 다시 그것을 부수고 또 짓고, 마치 우리는 심시티라는 게임을 하고 있는 듯하다. 지은 지 채 이십여 년이 지난 아파트 단지가 이제 나무도 제법 자라고 분위기 있는 단지가 될 즈음이면 여지없이 재개발이 되고 만다. 강남의 주민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결과를 축하하고 환영한다. 이제 때려 부수고 다시 지을 수 있는 조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농촌마을을 획일적인 슬레이트 지붕으로 덮어버린 새마을운동은 세기를 지나면서 뉴타운이라는 동명동의어로 다시 등장하여 다시 한번 서울에서 거대한 먼지바람을 일으킬 태세이다. 서울 하늘이 맑고 투명해질 날은 멀기만 하다.

광화문도 복원을 한다고 한다. 그 복원의 과정에서 세종로 주변도 다시 정비될 것이다. 성벽도 다시 복원된다고 한다. 다 지난 세기 우리가 자의로 타의로 무시하고 훼손해왔던 것들이다. 이제 그것들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우리는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그러나 한번 훼손된 역사, 문화, 자연환경을 다시 복원하기 위해서는 훨씬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이제 서서히 우리는 그 대가를 지불할 차례가 되고 있다.

도시가 매력적인 이유는 삶과 역사와 문화가 그 속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 공간과 장소에 시간의 기억이 적층될 때 우리는 도시와 호흡하고 느끼게 된다. 살만한 서울, 매력적인 서울은 이제 개발이라는 명제를 통해 얻어질 수 없다. “빨리빨리”보다 조금 더디더라도 우리의 삶과 함께 하는 공간과 장소를 시간을 가지고 가꿔나가는 것이 우리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청계천이 온전히 시민의 일상 속에 녹아들려면 훨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지금 청계천 옆 보도를 엉거주춤 가로막고 있는 작고 여린 나무가 베어지지 않고, 십년, 이십년을 자라 아름드리나무가 되어서 연인과 아이들을 위한 그늘을 드리울 수 있기를 고대할 뿐이다.


 

© copyrights 1999 - 2011 A.ru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