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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n My Work

- Alvaro Siza

 

내 디자인의 대부분은 실현되지 못했다. 일부는 단지 부분적으로만 완성되었고, 다른 것들은 근본적으로 변경되거나 심지어는 버려졌다. 이러한 부분들을 고려해주어야 한다.

본질을 드러내는 갈등과 긴장사이에서, 건축연구는 존재하는 혁신적인 경향에 대한 모색이자, 오로지 실재에 대한 순수 긍정적인 모사이며, 실재에 대해 규정된 한계에 대한 부정이다. 그리고 그 실재의 제 양상에 대한 단계적 해석으로서의 건축연구는 정적인 이미지를 바탕으로 할 수 없으며, 직선적인 진화과정을 따를 수 없다.

마찬가지 이유로 그러한 연구는 애매모호해서는 안되며, 그것이 설사 옳은 것으로 보일지라도 학문적 담론으로만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나의 디자인들은 극도의 엄격함으로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의 구상적인 한 순간과 그 미묘한 뉘앙스를 잡아내고자 하였다. 스쳐 지나가는 실재의 특성을 잡아내는 정도에 따라 그 디자인은 어느 정도 명확하게 나타나며, 그것이 정밀할 수록 더욱 손상되기 쉬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조용한 곳에 자리잡은 주거나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주말주택 같은 여백적인 작업만이 근원적으로 디자인된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는 건설과 파괴를 포함한 문화적 변형과정이 개입된 결과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 중에 무언가는 남아있다. 개개의 단편들은 여기저기에서 실현되어 우리들 사이에 간직되어 있으며, 그 자취가 공간과 사람들 사이에 남아, 부분들은 어떤 이에게 우연히 인식되거나 전체 변형의 과정으로 녹아 들것이다.

우리는 그 부분들을 모아 매개가 되는 공간을 만들고 이미지로 변화시킨다. 그리고 그것에 의미가 부여되고, 그 각각의 이미지는 다른 것들과의 관계를 통해 그 중요성을 갖는다.

이러한 공간에서 우리는 final stone과 결정적인 갈등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변형시키는 방식과 같은 방식으로 공간을 변형시킨다. '다른 것'들과 잘 짜여진 부분이라는 방식으로.

거주장소로서,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 경관의 창조자로서의 경관은 가변적인 형태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함으로써 이들 모두를 흡수하는데, 이는 모든 것이 경관에 자취를 남기기 때문이다. 개개의 단편적인 부분들로부터 출발하여 우리는 그것들을 지속시키는 공간을 모색한다.

 

나는 나의 작업에 대한 언급을 요청받아왔다. 나는 몇 개의 글을 써왔는데, 생각나는 대로 정리하면 여덟 가지 정도이다.

 

1. 나는 대지를 방문할 때부터 디자인을 시작한다. 대부분 그렇듯이 일정이나 상황은 불확실하지만. 어떤 때는 좀 더 일찍 시작하는데, 대지에 대한 설명이나 사진, 읽은 것이나 주어들은 것이 있을 때이다. 이는 최초의 스케치가 계속 유지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모든 것은 어디인가로부터 시작한다. 대지는 그것이 무엇이며, 무엇이 될 수 있으며, 또는 무엇이 되기를 원하는가에 따라 그 자체로 유효하다. 가끔 이것들이 서로 반대될 수 있으나, 이것들이 서로 전혀 관련이 없을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의 디자인도 마찬가지지만, 과거 내가 디자인한 대부분들은 최초의 스케치로부터 일어나고 태어난다. 혼란스런 방식으로. 따라서 대지에 남아있는 사소한 것들이 모든 것을 일깨우도록 한다. 대지는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사막이 아니다. 나는 언제든지 그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일 수 있다. 질서는 서로 상반된 것들을 모아서 만드는 것이다. (No site is a desert. I might always be one of the inhabitants. Order is the bringing together of opposites.)

 

2. 나는 카페에서 디자인하는 사람이고 작은 규모의 작품들을 하는 건축가라고 알려져 있는데, 다른 면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라고 굳이 내 생각을 이야기한다면, 그 작업들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카페에서 디자인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카바레에서의 뚤루즈 루트렉이나 폐허에서의 Prix de Rome과 같은 식의 작업을 하지는 않는다. 카페의 분위기가 영감을 주거나 황홀한 기쁨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카페는 (이 곳 포르토(Porto)에서) 익명으로 집중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장소이다. 이는 회의 테이블이나 다른 분야와의 토론, 전화, 계약서, 조립부재나 장비들의 카탈로그, 컴퓨터, 동료이웃들과의 만남을 피한다는 것의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이것들을 통해 일하거나 이것들을 위해서 일하는 것을 극복하고자 함이다. 얼마나 많은 카페를 들렸던가. 차, 커피와 더불어 나에게 특별한 관심이 부여되었다고 느꼈을 때 나는 다른 곳으로 옮겼다.

 

3. 최근의 몇 개의 프로젝트들은 조직된 거주자 집단 또는 미래의 거주자 집단과의 지루한 토론을 거쳤다. 거기에 새로운 것은 없다. 나는 다른 환경에서 그렇게 일을 해 왔거나 그러하길 원했다. 포루투갈에서 1974년의 혁명 이후, 원하든 아니든 그러하지 못했다. 감옥이 개방된 후 Porto, Lisbon, 또는 Algarve에서의 주거에 대한 투쟁은 주택, 지역, 노조의 경계를 넘어 진행되었다. 이는 도시를 장악하였다. 짧은 에피소드. 그런 식의 일이 방법으로 받아들여지면, 어떤 운동이건 손쉬운 변명, 또는 소외의 중개자로 퇴락하고, 우리나 다른 사람들의 욕구를 공식화하는데 몰입될 뿐이다.

 

4. 최근이나 몇 년 전의 나의 작품들이 지역의 전통 건축에 기반한다고 이야기된다. 이들 작품들에서 나는 작업자들이나 방문자들의 저항을 경험했다. 전통은 혁신에 대한 도전이다. (Tradition is a challenge to innovation.) 그것은 과거로부터 계승된 것의 도입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보수주의자이자 전통주의자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갈등과 절충, 접목, 변형사이에서 작업한다. (I move between conflicts, compromises, hybridization, transformation.)

 

5. 그들은 나에게 기반이 되는 이론이나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그 없다는 것이 내가 말하고 싶은 바이다. 그것은 교육에 의해 되는 것이 아니다. 파도에 몸을 내어 맡기는 배는 불가사의하게도 난파되지 않는다. 이는 그들이 말하는 또 다른 면이다. 나는 단기적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범선이 바람 불어오는 쪽으로 나아가는 갈지자 진로의 한 구간)을 너무 많이 드러내지 않는다.(I do not expose the boards of our boats too much.) 적어도 높은 바다에서는. 과도한 힘은 그것들을 파편으로 조각내기 마련이다. 나는 조류를 연구하고, 주류와는 다른 흐름인 소용돌이를 연구한다. 나는 좁은 해협에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갑판 위에 외로이 걷고 있는 것으로 보여질 수 있다. 모든 선원과 장비가 그 곳에 있고, 선장은 유령이다. 나는 북극성이 희미하게 보일 때에는 키를 잡으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명확한 길을 집어내지는 않는다. 길은 결코 명확하지 않는다.(The ways are never clear.)

 

6. 나는 내 손으로 디자인한 것을 직접 만들지 않는다. 또한 내가 모든 디자인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결핍을 낳는다. 손, 마음, 그리고 모든 것으로서의 몸은 한 개인의 몸으로 머물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부분도 다른 것과 관련없이 자율적인 것은 없다.(No part is autonomous.)

 

7. 나의 완성되지 못하고, 간섭당하고, 변경된 작업들은 미완성의 미학과는 관련없다. 또한 개방적인 작업에 대한 믿음과도 관련없다. 그것들은 무기력한 완성 불가능, 내가 극복할 수 없었던 장벽들과 관련있다.

 

8. 나는 불규칙한 형태의 바닥에 30 x 30의 모자이크를 까는 방법에 작업자와 논의를 하는데, (내 제안으로) 사선으로 또는 벽의 한 부분과 평행하게 까는 것을 제안한다. 그가 나에게 말한다. "베를린에서는 당신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깔지는 않는다." 나는 다음 날 현장에 간다. "당신이 옳았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더 쉽군요." 그 작업자는 그렇게 말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에 동감한다. 과거에 파르테논이나 샤르트르 성당, 카사 밀라에서 했던 것처럼 가장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짓고자 했던 것과, 오늘날에 그 신비한 낯설음(magical strangeness)과 두드러진 것들의 기발함(peculiarity of obvious things)을 재발견하고자 했던 것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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