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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지진 피난주택 및 학교 2006

 


- 파키스탄 현지 피난 천막촌


-발라코트지역의 피해상황

 


-누나의 묘 앞에 있는 아이와 아버지

 


 


-응급피난주택- 기존의 건물 폐자재를 이용

 


-응급피난주택


-신축중인 디올리-코리아 학교

 

      
      -거의 완성된 학교


 

지난해 11월 6일 새벽, 서울로부터 20여 시간을 걸려서 도착한 우리일행을 맞이한 것은 쏟아질 듯한 별빛과 차갑고 낯선 공기였다.
이슬라마바드까지 비행기를 3번 갈아타고 자동차 전조등 불빛에 의지하여 험준한 산길을 곡예 하듯이 달려 도착한 곳은 파키스탄 북부 카슈미르 지방의 이름모를 마을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둠 속에서 희미한 실루엣의 천막들뿐이었고, 현지 선교사의 안내로 그 천막들 중 하나에 들어가 부족한 잠을 청했지만 천막과 담요의 틈새를 찢고 들어오는 칼바람에 쉽게 잠을 들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니 그곳은 피난을 위해 세워진 거대한 천막촌이었고, 사이사이에서 아침밥을 준비하기 위해 피어오르는 연기와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로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도 막 아침식사를 시작하려던 순간, 거대한 말떼무리가 달려오는 듯한 소리와 함께 지축의 흔들림이 느껴졌다. “아뿔싸, 이게 지진이구나!” 우리를 열렬히 환영(?)하는 진도 6.0의 여진과 함께 우리 일행의 1박4일 파키스탄 현지 방문 일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지난 2005년 10월 8일, 파키스탄에 일어난 진도 7.6의 지진은 단 30여초 동안의 대륙판의 충돌이었지만, 그로 인해 8만여명의 사망자와 300여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고, 순식간에 파괴된 현지의 삶과 환경은 복구에만 3년, 아니 30년이 걸릴지 모르는 대지진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 현지의 피해상황에 대해서 간간이 듣기는 했으나, 파키스탄 복구 사업에 관계를 맺기 전까지는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먼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이리저리 벌려놓은 일들에 뒤치다꺼리 하느라 바빠 주위를 돌아볼 기회가 없었던 나는 우연한 기회에 파키스탄의 재난구호를 위한 민간모임에 대해서 듣게 되었고, 파키스탄의 재난구호가 삶의 터전을 잃은 피해자들에게 주거 공간을 제공하여 올 겨울의 추위로부터 대피하고 희망과 재건의지를 북돋우기 위한 후원이고, 내가 하는 일이 그러한 집을 짓는 과정과 관련되는 일인지라 자의 반 추천 반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파키스탄에 희망의 집을 지어주기 위한 “파키스탄 1004”(pakistan1004.cyworld.co.kr)모임은 파키스탄 현지에서 피난을 위한 최소한의 주택을 건축하는 데 드는 비용이 대략 일백만원 수준이라면 1,004달러로 1,004채의 집을 짓기 위한 1,004명의 자발적 천사를 모집하고자 하는 의미의 모임이다. 파키스탄에서는 집 한 채에 평균 10명이 거주할 수 있으므로, 1,004채를 지어 약 일만 명의 지진 피해자들에게 피난을 위한 주거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여러 참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홍보 덕에 기업과 개인들이 후원들이 이어졌고, 나를 포함한 선발대가 재해현장에 도착하였다.
각자 생업에 바쁜 와중 시간을 쪼개어 참가한 여정이라 3박 4일의 짧은 일정이었고, 오고 가는데 하루씩을 제외하면 실제 일을 진행할 수 있는 시간은 겨우 이틀뿐이었고, 오고가는 시간을 비행기에서 소비하여야 하여서 실제는 1박4일의 일정이었다. 그러나 현지의 선교사와 재난지역을 총괄하고 있는 파키스탄 군부대의 도움으로 짧은 시간이나마 현황을 파악하고 구호관련 협의를 진행할 수 있었다.
재난현장의 상황은 상상했던 이상이었다. 피해가 가장 심한 지역 중 하나인 발라코트 지역은 마치 원자폭탄이 투하된 것처럼 도시전체가 폐허가 되어있었고, 발굴과 복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다소 여진으로부터 안전한 곳에 자리한 피난민 천막촌에서는 이재민들이 가족을 잃은 슬픔조차도 채 느낄 겨를 없이 유엔의 긴급 구호품으로 추위와 배고픔을 겨우 달래고 있었다. 산을 깎아 만든 도로의 많은 곳이 붕괴되어 아직도 고립된 많은 마을들은 오직 헬리콥터에 의해서만 전달되는 구호품에 의지하고 있었다.
피해지역인 파키스탄 북부 카슈미르 지방은 해발 3000미터에 이르는 산악지역으로 밤과 낮의 기온차가 심하고 눈도 많이 오는 지역이다. 겨울에는 영하 20도의 혹한이 계속되고 12월부터 3월까지는 2미터 넘는 눈이 내리는 곳으로 지진으로 집과 가족을 잃은 300만이 넘는 파키스탄 이재민들은 맨땅의 천막 속에서 담요 한 장으로 올 겨울 또 다른 재난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부상자, 어린이, 노약자들은 추위로 인한 폐렴 등의 또 다른 재난에 속수무책 방치되어 있다.
“파키스탄1004”는 몇 차례의 방문을 통해 현지의 재난대책을 총괄하고 있는 군부대와 협의를 진행하였다. 디올리라는 마을에 시급히 피난을 위한 주택을 짓고, 장차 이 마을의 이름을 디올리-코리아 빌리지라고 하기로 하였으며, 재건의 주축은 마을주민이, 기술은 군 공병이, 자금과 건축자재는 “파키스탄1004”가 부담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분담하였다. 현재 400채 정도의 긴급 주택이 건축되어 주민들이 입주하였으며, 향후 동절기가 끝나면 10개 교실 규모의 학교를 신축하기로 하였다. 실제로 지진이 일어났던 시간이 일과를 시작하는 시간이고 학교가 많이 무너지는 바람에 어린 학생들의 피해가 무척 많았다고 한다. 한 학교에서는 학생의 삼분의 일인 300여명이 희생당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발라코트에서 새롭게 조성된 공동묘지를 지나게 되었는데, 묘위에 꾸며진 꽃장식들은 이 묘의 대부분이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묘지에서 한 꼬마아이가 유난히 작은 묘 주변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 아이는 슬퍼 울고 있는 표정이라기보다는 묘 주변에서 놀이를 하고 있는 듯했다. 나중에 우리에게 다가온 그 아이의 아버지는 그 묘의 주인이 자기의 딸이며 그 아이의 누나라고 알려줬다. 그 아이의 누나는 그날 학교에 갔다가 희생되었다. 주변의 다른 묘들도 그 아이의 엄마와 친척들이었다. 그 아버지는 우리를 천막으로 안내하여 그 누나가 죽은 날 학교에 가져갔던 책가방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책가방속의 부러진 연필. 그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비극일지 모른다. 그 꼬마아이의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가 아직도 선하다. “인샬라”
올 겨울 우리나라도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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